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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 3. 3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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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레프 톨스토이|역자 이강은|창비 |2012.10.05
페이지 160|ISBN ISBN 안내 레이어 보기 9788936464073|판형 A5, 148*210mm

_책 내용의 결말과 전개에 대해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_병이 든 자는 자기모순을 하며 미쳐버리고 만다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이것은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목전에 얼마 두지 않은 상황에서 문득 떠올린 생각이다. 그는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자신이 살아온 껍데기 뿐인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늘 품격 있는 겉모습을 유지하고, 그리고 상류층으로 -비록 그는 귀족은 아니었지만 그랬었기에 더- 머무르기를 바라 마지않는 인물이었다. 늘 자신의 삶을 완벽하고 교양있게 만들기를 희망하는 자였으며, 그랬기에 그는 늘 사람들을 가슴으로 대하지는 못하였던 인물이다. (물론 그것은 그의 주변을 이루는 사람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런 그가 쌓아올려온 명예와 재산이 죽음이라는 자연현상 앞에서 무력해져가는 모습은 우리의 삶 또한 다시 한 번 반추하게 만들어주는 듯 하다.

 

 

 

이런 모든 것들은 이반 일리치가 피고인들을 대하면섯 멋지게 수천번도 더 써먹었던 그런 방법이었다.

 

 

 

 내가 이 글을 읽으며 주목하였던 부분은 이반 일리치가 자신의 무력을 느끼는 두 장면이었는데, 하나는 의사를 마주하는 장면과 나머지는 게라심을 마주하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에서의 보여지는 무력은 그 성격이 몹시 다르다. 의사를 만난 이반 일리치는 지금까지 자신이 삶의 절박한 상황을 마주쳤을 사람들을 대했을 완벽한, 자기도취하던 정돈되고 스마트한 태도를 의사를 통해 마주보며 분노한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과 위치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건 자신이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의사로하여금 변화를 가할 수 있는 상황과 위치가 아니라는 점도 그러하였겠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모습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라심을 마주하는 그 장면이 진정으로 작가의 풍자를 위한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이반 일리치가 죽음에 허덕이기 이전에 게라심을 만났다면 어떠하였을까? 자신보다 급이 낮다고 생각하면 연을 이어가려하지도, 집에 오래 들이지도 않으려 했던 그 이반 일리치가 말이다. 그런 그가 육체적인 고통과 심연의 어둠 속에서 정신이 끊임없이 고통받던 그 순간에서 그를 유일하게 기뻐하게 만든 자가 바로 다름아닌 게라심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주변에 대한 끊임없이 의심을 거듭하며 계산적인 행동과 그 연쇄로 쌓아올려나간 그마저도 순수하게 호의를 내비치며 약한 자를 기꺼이 도우려는 선한 자에게 마음이 끌리는 모습은 어떤 면에서 유머러스해 보이기도 하다. 부와 권력에 가까이 위치해 있는 사람들일 수록 순수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건 어쩌면 꽤 오래된 고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얼핏 하였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 남자가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사랑에 빠지고 말아버리는 클리셰는 마냥 로맨스 장르만의 도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전자와 후자의 상황은 상위층을 비판의 대상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환상으로 여기는지의 간극이 존재한다.)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거짓말이었다. …(중략)… 그의 상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오직 게라심 뿐이었다. 그래서 게라심과 함께 있을 때 이반 일리치는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그렇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그렇게 인생에 포함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던 게라심같은 이를 마음의 위로로 여길 정도로 미쳐버린 것이다. 수없는 계산과 그 속에서 형성된 사회관계에서 행복하였던 이반 일리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결국 계산 없는, 꾸밈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였던 가치들이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고, 어리석다 여긴 가치에 위로받는 그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 없다. 나는 작가가 말하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게라심의 존재를 통해 가장 강렬하게 느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가 불치병에 시달리는 내내 유일하게 위로를 받은 게라심과, 그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아들조차 진정으로 그를 걱정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할까? 어찌됐든 이반 일리치는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한다고 여기는 이들을 통해 행복을 느꼈다. 이가 결국, 이반 일리치 같은 자들에게 건네는 아픈 지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