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만화에 페미니즘 끼얹기
_만화계에 불어온 페미니즘, 여성의 이야기.
지금은 출판되어 나온 책이지만, 당시 펀딩으로 구입하였던 기억이 있다. 페미니즘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최근 몇 년 페미니즘 의제가 함의되었거나 그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 웹툰들과 함께 주제별로 다루고있다. 페미니즘, 특히나 래디컬측 논의에 익숙해져 있다면 낯설지 않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있었다.
확실히 토픽 자체는 익숙하기는 하나, 나의 경우 전반적인 주제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거나 관심있는 방향으로만 깊게 알고 있다보니 많이 접하지 않은 주제 면으로는 새롭게 접하거나 알게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페미니즘 서적들은 앞에서 말한 대로의 단순한 교양 쌓기 측면보다는, 내가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느끼는 부조리의 감각을 명확하게 텍스트화시켜주는 면에서 나를 통쾌하게 해주는 점이 좋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여성이라는 성별에게 부여된, 긴 역사속에서 너무 당연시하게 치부된 역할은 그것을 '원래 그런 것'으로 오랫동안 규정해왔기에, 이 선험적인 인간 사회의 인식을 언어화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참 많고 이는 정당한 의견의 피력을 상당히 불리하게 만든다.
가령 예를 들어, 여성이 외모를 꾸미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명제화되어있다. 여자는 원래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성별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그렇다고 알려준다. 그렇지 않은 여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어느 사회에나 예외는 늘 있으니까. 이를 주장하는 것은 1차원적인 대화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여성의 생산적인 활동시간을 불필요하게 잡아먹는다는 것이고, 이를 암묵적으로 사회가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들의 존재가 이러한 주장에 계속해서 반박할 근거를 만들어준다. 그것이 반박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보아도 소모전이 되기 십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들이~ 여자들은~같은 레퍼토리를 듣고 살아오는 주제에 그러한 개인의 기호가 정말 순수한 본인 의지로 형성된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취미는 개개인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에 대한 현재 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설사 여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공식 자리에 서기 위한 조건으로 메이크업이 기본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만은, 제일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회적 약속이 여성이라는 입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냐는 점이 될 것이다. 지루하기 그지없어 이제는 말하기도 입아프지만 이 시대에도 어딘가에서는 발뒤꿈치가 까져가며 힐을 신고 일을하는 여자가 존재하고, 풀메이크업을 하고 데스크 업무에 나가느라 휴식시간 때 책상에 잠깐 엎드리지도 못하는 여자가 존재한다. (이것이 단지 자신의 능력 부족을 핑계를 대며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 말대로 시골 깡촌에서 인강 하나 듣지 않고 교과서만으로 수능 만점을 받는 학생들도 이 세상에 있긴 하지.)
이러한 상황에서 탈코는, 쉽게 말해서 닭과 달걀을 교체하는 작업이다. 꾸미고 다니는 여자들이 비율적으로 많아서 여자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존재가 되었으니, 그 비율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다. 그럼에도 이 단순한 주제에 '자신이 자유롭게 생각한다면 탈코', '꾸미기 억압을 받았던 사람은 꾸미는 것이 탈코'와 같은 괴상한 주장들이 곧잘 끼어든다. 남자들은 단지 자신이 싫다면 화장하지 않고 다니면 그만인 이 주제에 대해서 나는 여성의 꾸미기를 주제로 세 문단이나 할애하여 설명해야한다. 이게 불합리함이겠지.
대학에서 젠더 심리학을 강의해온 러네이 엥겔른은 여성 일반을 관통하는 독특한 증상을 감지한다. 그들은 신체 모니터링에 과도한 리소스를 할당하느라 다른 과업에 전투적으로 몰두할 수가 없다. "여성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는 상관없이 여성의 외모에만 초점을 맞추는 문화"가 여성을 세계에 참여하기보다 세계에 보여지는(display) 존재로 길러내기 때문이다.
다 된 만화에 페미니즘 끼얹기 | 57p
물론 이러한 주제들은 다른 페미니즘 서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주제들이 서브컬쳐나 미디어문화에서 어떻게 표상되고 서사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또 새로운 경험이다. 사회의 인식이나 플로우(flow)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며, 그중 특히나 만화는 어린 나이까지 독자로 포괄하는 영향력이 큰 매체이다. 이러한 장르에서 여성 서사 작품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좋았던 것은, 그저 좋은 마음으로 읽어보았던 웹툰을 좀 더 섬세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좋지만, 창작 활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단순히 한두개의 웹툰을 심도있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좋은 점이 있는 작품들도 함께 다루기 때문에 자칫하면 경솔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같이 지적하는 것도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서사'라는 표현 그 자체는 여성을 이 같은 대의 아래 결집시키는 직관적 구호로서는 제법 잘 기능해온 편이다. 여성 서사가 비평 용어로서 자리잡기 위해 그 의미가 정교화되어야 한다면, 지속적인 경험과 토론을 통해 마침내 결론을 도출해낼 페미니스트 집단의 지성에 희망을 걸어볼 일이다.
다 된 만화에 페미니즘 끼얹기 | 들어가는 말_10p
여성 서사라는 이름에는 여성이라는 역할이 좀 더 당당하게 미디어 장르에서 활동하길 원하는 염원이 들어있다. 여기서의 여성은 가상 세계관 속의 캐릭터를 뜻하기도 하고, 현실을 살고있는 실제 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F등급 영화 분류기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여성 영화채널 씨네프 채널의 채널 설명에 따르면 '여성 감독이 연출했거나 (directed by a woman), 여성 작가가 각본을 썼거나 (written by a woman), 여성 캐릭터가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 영화 (features significant women on screen in their own right)'를 일컫는다. 이렇게 문화 컨텐츠에서의 페미니즘 의지는 결국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준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많은 충돌이 일고 있다. 나는 이가 가끔 피곤하게 보일 때도 있고, 비생산적인 의견교환으로 보이기도 한다.
원래 옳은 방향을 향해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옳은 방향을 향해 가기 때문에 그 발전 과정에서 싸움도 충돌도 생긴다. 그래서 나의 장르 선호도와는 별개로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더 늘어나는 것이 좋고, 그런 작품들을 많이 보고 싶다. 책에서 나온 작품들 중에 재미있게 보았던 웹툰들도 많아서 반가운 마음으로도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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