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19년도에 직접 썼던 레포트 글도 중간중간 삽입되었다.
_책 내용의 결말과 전개에 대해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검은 꽃
_이역만리 너머 대지에서 살아갔던 사람들.
책 자체는 읽은 지 조금 되었다. 학교 역사과목 교양 수업 때 레포트용으로 고른 책이 이 책이었고, 본의아니게 꽤 유명한 작가인 김영하의 글을 나는 이 책으로 시작을 하였다. 당시에야 과제로 읽었기에 내가 골랐음에도 제법 지루하게 읽었는데 -책이 지루하다는 뜻이 아니라, 무슨 책이 되었든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을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그렇기에 이번에 다시 잡아 보았을 때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 자체가 즐겁고 흥미진진하냐 하면 그건 거리가 멀다. 스토리가 재미있어도 어디까지나 역사 소설이고, 이 책의 배경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쾌할 수 없는 시기로 자리 잡고 있는 이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글을 읽어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재미있다. 꼭 즐겁고 유쾌해야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의 무릎과 얼굴과 배가 차례차례 늪에 처박혔다.'
고아로 자란 소설 인물 이정은, 돈을 벌고 돌아와 논을 사겠다는 생각으로 멕시코를 향해 떠나는 일포드호에 오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무색하게도, 그는 결국 멕시코에서 숨을 거둔다. 소설은 1905년 대한제국에서 일어난 묵서가(墨西哥, 멕시코의 음역어) 이민을 다루고 있다. 실제로 존재했던 일이었고, 역사였으나 익숙한 한국사는 아니다. 그렇기에 김영하의 검은 꽃이 이런 익숙하지 않은 사건을 다루어 그 시절의 사람들을 기억하게하는 소설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건 그 자체는 낯설지 몰라도, 이러한 일련의 사건전개과정은 익숙하다. 억압의 역사는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정서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민족 정서가 이 책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익숙할지언정 결코 편안하지는 않다. 이정이 목표하는 것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바닥을 친다는 것은 글을 읽는 내내 너무나도 명백하고, 실제로도 이정은 농장을 나와 미국으로 망명하기는 커녕 남의 나라 혁명에 휩쓸려 전장의 늪에 처박히는 것으로 결말을 맞이한다. 글 내내 차지하는 가슴 한 켠의 씁쓸함이 이 책의 중심 정서이다.
글의 전체적인 인상은 이토록 쓸쓸하다. 하지만 책이 마냥 그것 뿐만이었던 것은 아닌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외국 문화와 조선의 문화의 충돌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강하게 쥐고 있는 신분제도는 멕시코로 향하는 선박에 오르는 순간 부서진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각자의 멕시코드림이 드러나는데 이는 신분도 마찬가지이다. 신분이 다양한 인물들이 신분제가 없는 사회에 섞이며 신분은 허울뿐인 이름에 불과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 신분이 결코 긍정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사람으로서 신분이 평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서 신분이 평등해지고, 이는 인간의 다양성을 노예라는 이름 아래에서 일련화시킨다. 계급사회를 통해 계급이 사라지는 이 기묘한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양반 앞에서 당당해지는 사람들을 통쾌하게 보아야하는데, 어리석어보이기 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양반 출신의 이종도는 양반이었지만, 일포드 호에 오른 순간부터 그는 양반이 아니었다. 본인이 양반이라 주장했기에 양반일 뿐이었다. 전주 이씨 가문의 일가족 4명은 밥을 먹으려면 똑같이 줄을 서야했고, 똑같이 자야했다. 이는 멕시코 땅을 밟고나서는 더 명확해졌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해야했고, 일하지 않으면 그 날 매점에서 음식과 바꿔올 돈을 벌 수 없었다. 그들도 똑같이 가시에 손을 찔려가며 에네칸(멕시코 농장에서 자라는 선인장으로, 한국인 노동자들이 매일 수확해야했던 식물)을 재배해야만 했다.
반대로 미천한 자도 있었다 도둑질을 하던 최선길도 있었다. 자신의 종교를 버린 신부도 있었다. 무당도 있었으며, 군인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조선에서 어떤 일을 했었고 어떤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었던 간에 그들은 멕시코에서 그저 노예1이 되어야 할 뿐이었다. 그들의 다양함은 노예라는 이름 아래에서 일축되어갔고, 그럼에도 또 동시에 그 속에서의 그들의 배경은, 살아온 일생은 그들에게서 지독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시가 되려던 김옥선도, 한 때 신부였던 박광수도, 돌석도, 이정도, 멕시코의 땅에서 정부군의 손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들의 삶과 결말이 함께 겹쳐졌을 때 서글픔은 독자로 하여금 짙게 풍겨온다.
멕시코 이민의 이야기가 다뤄진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멕시코 이민 이야기는 매체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당연할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들은 잊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국가, 여실치 못한 상황 아래에서 멕시칸 드림을 꿈꾸며 낯선 이국 땅을 밟았지만 4년의 노예계약이 끝난 뒤에는 이미 일본인이 되어있었다. 멕시코 이민이후 일본은 소설에서 묘사되어있듯이 조선인들이 해외로 이민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통로는 사라졌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멕시코에서 귀국을 바라던 사람들은 잊혀져 갔다.
역사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숨쉬었고, 살아숨쉰 호흡의 갯수만큼의 이야기가 역사속에 남아있다. 우리는 모든 역사 사건들에 집중할 수 없고, 소외되는 사건들은 당연히 발생한다. 그게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소외하고 지나치기엔 작지 않은 사건이며, 재외교포 문제는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있어 뗄 수 없는 문제이다.
익숙한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여러가지 해석을 제시하는 것 모두 의미있는 일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톤해 기록되고 남겨진 사실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일은 가치가 있다. 이러한 것들에 비해서는 진부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잠시 잊혀져있던 과거를 조금 진부한 감성과 함께 다시 꺼내드는 일도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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