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_미켈란젤로는 미술이 아니었다.
예전에 사두고 완독은 최근에 하였다. 입문서라고 소개되어있는 만큼 특정 분야나 시기에 대해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현대미술이라 정의되는 미술 전반의 정서와 그 기반이 되는 예술계의 양상을 토픽에 따라 짚어주는 느낌이 강하다. 다만 입문서가 아닌 입문서라고 느낀 것이, 내용이 결코 쉽고 가볍지는 않다. 많은 갈래를 툭툭 건드리며 진행되는 이 글은 얕고 넓게 미술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꽤 넓은 미술계 조예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나 또한 글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읽어내려간 부분들이 몇몇 존재한다.
가령 페미니즘 섹션에서 린다 노클린의 주장이 가볍게 설명되는데, 이 린다 노클린은 예술계의 페미니즘에 대한 초기의 주장이기에 그리젤다 폴록과 같은 역사에의 페미니즘의 개입이라는 시선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인물의 주장을 함께 보면 흥미롭다. (물론 이 책이 간행된 것은 1994년이고 폴록의 글이 2002년에 나온 글인 것을 감안해야한다. 즉 이 책 자체가 쓰인지 꽤 오래된 책이며, 2000년대 이후의 예술을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야한다.) 올해 전반 학기에 꽤 자세하게 배었던 아방가르드의 한계점 또한 배우고 고찰했던 분량에 비하면 주제를 짚고 넘어가는 정도이다. 물론 이 책이 얄팍하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 책은 미술사 책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다. 저자는 예술이라는 개념의 일련적이면서도 일련적이지 않은 변화와, 예술이라는 용어가 포괄하고 영향을 미치는 그 범위의 변화를 통해 미술을 어떻게 정의해야하는지 그 시각을 제시한다.
미술관과 화랑, 미학, 예술이란 용어와 마찬가지로 미술사(art history) 역시 근대의 발명품이다.
의외로 잘 모르는 부분 중 하나는,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형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개념이자 단어라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정의와 분류조차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나 동굴벽화, 이집트의 조각상, 종교화 등의 물건들이 예술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만들어질 그 당시 예술이 아니었으며, 예술로 간주되어 제작된 것도 아니었으며, 그 당시에는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그린 천지 창조도 예술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천지 창조는 가히 아름답고 성스러울진 몰라도, 예술로 정의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천지 창조는 교황의 의뢰를 받아 종교적 이야기를 천장화로 구현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이라고 여긴 것은 후대의 사람들의 '그렇다고 정의된' 통념에 따른 인식일 뿐, 그에게는 그것이 어떤 미술 작품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과 이에 대한 답을 서술하고 있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관계에 대해서 나는 꽤 관심이 많았기에, 대중미술의 서술비중이 많은 후반부를 재미있게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계급제도의 해체로 인해 대중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우리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 분리하고 있는 개념인 일과 여가는 각각 노동계급과 지배/귀족계급의 분리된 일상이었고, 한 사람의 라이프 사이틀 안에서 일과 여가의 시간이 공존하게 되며 생긴 여가는 대중문화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취미-여기서 취미는 어떤 여가생활에서 즐기는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한국어로는 취향(taste)의 의미에 더 가까운 개념을 가리킨다-는 계급을 구분하는 수단으로서 작용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여가의 삶과 일의 삶이라는 구분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도출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취미에서의 계급 발생은 결국 문화를 대중예술과 순수예술로 구분시킨다. 현대의 예술은 이 두 예술의 밀월 속에서 다얀한 상호작용을 보인다. 각자가 서로와 단호하게 선을 긋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영향받기도 한다. 떄로는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워홀이나 퍼블릭 에너미처럼 그 양자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합체시키기도 한다. 즉, 이러한 구분 자체가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그 구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 또한 현대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취미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며 생산되는 것이다.
저자도 저자지만, 나 또한 한 개인의 인격과 취향의 형성과정이 매우 역사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모든 취미는 형성된다고 믿는다.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각자 매우 다르고 천차만별이지만, 이는 사회에서 개인이 받는 영향과 그 배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능력과는 다소 구분되는 영역이다.) 이러한 인정이 레디메이드를 이용하는 방식을 만든다. 뒤샹이 레디메이드를 이용하여 미술품을 만드는 그 과정은, 기존의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만드는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을 천재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독자적으로 타고 내려오는 '무언가'로 정의하는 것에서 벗어나, 외부 요소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받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인정이 미술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행위의 핵심이다. 미술은 결국 시각 감각을 기반으로 한 자아와 가치관의 재현이며, 이는 지독한 사회적 행위이다. 결국 미술은 주변과의 상호작용의 시각적 산물-공감각적 작품이나 시각에 의지하지 않는 작품도 존재하나 기본적으로 시각기반의 예술적 행위임을 간과하지 말아야하며 나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시각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이며, 이는 일상생활이라는 외부요소와의 밀접한 관련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존재나 삶에 대한 근본적 사유의 매개 행위인 것이다. 이것을 알면, 우리는 그 때 미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알 수 있고, 미술 속에서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p.s.조금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피카소도 '콜라주' 기법을 시작하며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신화적 위치를 포기하는 행위는 남성 권력에 대한 포기와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과거에 천재성은 백인 남성에만 해당하는 사실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데, 실제로 미술의 독립적인 영역에 대한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한 가치판단이 이루어지는 미술계에서의 권력은 백인 남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이러한 것의 포기는 곧 남성 신화에 대한 포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포기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작품, 그리고 세계에 대한 지식과 권력을 획득하게 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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