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책 내용의 결말과 전개에 대해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_예고 없이 감상 도입부터 스포일러 강하게 들어갑니다.
_성(性)적으로 왜곡된 가치관이 반영된 콘텐츠입니다. 미성년자의 열람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현대물 #군부물 #사건물 #외국배경 #홍콩 #독일 #일공일수 #배틀연애
천재 정재의를 형으로 둔 정태의는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전직 군인이다. 이 둘의 생물학적 부친인 삼촌 정창인의 권유 아닌 권유로 국제 연합 인적 자원 양성기구(UNHRDO)에서 반년을 기한으로 일하기로 한 정태의의 인생은 손이 예쁜 미치광이, 일레이 리그로우와 엮이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RIDI 제공
메인 커플링 | 일레이 리그로우 X 정태의
#동갑커플 #강공 #미인공 #광공 #재벌공 #미남수 #전역군인수 #호구수
PASSION
_사랑도 결국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그런데 너는 누구야? 네 이름은 뭔데.'
"나, 나는――."
패션 (PASSION) 2권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일레이.'
패션 (PASSION) 1권
너무나 유명한 패션(PASSION). 꽤 초반에 외전까지 쉬지 않고 쭉 달린 작품이다. 패션-반칙-렌보시 이 순서로 읽으면서 사건물에도 재미를 붙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물론 패션은 그리 사건이 어렵게 짜여 있지는 않아서 이해가 어렵지는 않다. 인물들 이름이 헷갈려서 이해가 좀 느릴 수 있을 뿐. 사건은 크게 3권을 기준으로 UNHRDO 파벌싸움, 정재의 찾기 이 두 개로 나뉜다.
물론 사건은 두 인물이 다가가는 장치가 되어줄 뿐, 사건 자체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지는 않는 느낌이다. 두 주인공인 정태의와 일레이 두 사람이 결국 어떻게 감정을 확인하고 이어지는가가 골자이므로... 이 사이사이 신루가 기폭제 역할도 해주고, 뒤로 갈수록 정태의의 '길상천'이라는 속성도 크게 부각된다.
"정태의는 도대체 왜 일레이 리그로우를 좋아하게 되는가?" 사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일에 이유가 특별하게 있겠냐만은, 정태의라는 인물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기는 해도 그만큼 관계에 대해서 맺고 끊음이 단호한 성향임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사실 일레이 리그로우라는 인간이 외모는 번듯해도 맨손으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성정에, 섹스 상대로서의 취향도 아니며, 심지어 정태의와의 첫 섹스도 강간으로 이루어진만큼 정태의가 좋아할래야 좋아하기 힘든 조건만 가졌다면 더욱이. 그럼에도 소설이 끝을 맺을 때까지도 정태의가 고수하는 '이 놈이 하는 짓은 싫을지언정, 사람 자체가 싫어지지는 않는다'의 태도에는 길상천이라는 장치가 크게 작용한다.
(한번 더 언급하자면 일레이와 태이의 관계가 유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외전인 다이아포닉 심포니아를 거쳐 스위트까지 보게 되었을 때 그러한 것일 뿐, 본편 내내 나오는 씬이 상당히 강압적이다. 원래 성정을 따지면 엄연히 정태의를 많이 봐주고는 있지만 그건 일레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태의를 거칠게 다루는 편. 정태의가 UNHRDO 오기 전까지도 다사다난해서인지, 본인이 느슨한 인간이라 그런지 화만 내고는 넘길 뿐.)
"길상천이니 뭐니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고 해도, 다 정상적으로 앓기도 하고 뛰놀기도 하면서 자랐다고. 형도, 나도. ……정말로 복덕을 주는 자라면 옆에 있는 자가 앓아눕도록 하지는 않을 테지."
뒷말은 마치 혼잣말 같았다. 뭔가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니 실제로도 혼잣말이다.
"그래. 분명 너는 내 길상천은 아니지. 너와 함께 있다 해서 독을 마셔도 말짱하다거나 독을 아예 안 마시게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니. 내게 있어선 그저 평범한 보통 인간에 지나지 않아."
패션 (PASSION) 3권
길상천(吉祥天), 길상천녀는 불교 경전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불교의 기원인 인도의 힌두교 신화에서는 락슈미(Laksmi)로 불린다. (이에 대한 설명은 소설 내에서도 나온다.) 행운을 주는 여신이라고 하는 이 장치가 패션 내에서 중요한 장치인 듯해서 얕게나마 찾아본 적이 있다.
길상천은 행복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모두에게 행운을 주는' 역할을 한다. 행운을 관장하는 신화적 존재는 사실 길상천 말고도 많은 편인데 왜 굳이 길상천이란 단어를 썼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아마 길상천의 남편인 비사문천(毘沙門天)때문이 아닌가 싶어졌다. 길상천의 남편은 힌두 신화에서는 비슈누, 불교 신화에서는 비사문천으로 이르는데 아마 일레이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작품 내내 락슈미가 아닌 길상천으로 호칭을 고정시켰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고, 비사문천이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사천왕 중 한 명이자 동시에 전쟁을 맡은 3신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일단 비슈누는 자애로운 신이라는 점에서 일단 일레이는 탈락이다.) 재물신이기도 하다니 다이아몬드 숟가락이라는 속성도 딱 들어맞는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보면 정태의가 행운을 주는 존재는 쌍둥이 형인 정재의로만 한정되어있다. 작품에서 정태의는 천재적인 두뇌를 자랑하는 정재의때문에 자신에게 순수하게 접근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하고 그러한 점에서 서운함을 느낄 만한 일을 제법 겪은 듯하다. 실제로 신루와의 관계 갈등 중에도 '자신을 보고 재의 형을 찾는 사람들을 보는 것에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자신과 가까워지고 싶어 했다고 믿었던 사람이 사실 형에게 관심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힘이 빠진다'는 식의 대사도 있고. 당장 가까운 사람인 숙부만 해도 재의를 더 아낀다.
즉 본인 그 자체가 길상천의 행운은 필요 없을 정도로 힘도 있고 재물도 많은 비사문천은 어쩌면 길상천을 행운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길상천이라는 존재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일레이가 정태의의 행운을 원한 것이 아니라 정태의를 원했던 것처럼.
"그래, 널 좋아한다고 하면 쓸데없이 빼는 척 않고 얌전히 다리를 벌려줄 건가? 그걸로 번거로운 절차가 생략된다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 태이,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는 걸로는 좀 약하군."
태이, 사랑해, 라고 말을 이으며 일레이는 피식 웃었다.
찬물을 뒤집어쓰고 잠에서 깬 기분이다.
패션 (PASSION) 3권
"너는."
"너는 알고 있었지. 어제 내 방에 왔을 때부터, 아니 그 전에도 이미."
정태의의 말에 일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웃는 듯 마는 듯한 그 얼굴은 긍정을 답하고 있었다.
"어제 나와 같이 있으면서, 몇 시간만 더 있으면 이 녀석이 꼭두각시 짓을 하겠구나, 내일 몇 시쯤에 교관실로 나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 날 건드리면서는, 끝까지 다 박아 넣으면 이놈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텐데 그러면 일에 차질이 있겠지, 약간 참아줘야겠어, 그런 생각을 했어?"
패션 (PASSION) 3권
대부분의 일에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정태의가 왜 이 상황에서 이다지도 화를 내는지도 여기서 설명되는데, 정태의가 일레이에게 느끼는 호감의 이유 중에는 자신 그 자체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판단한 점도 한몫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일레이가 자신을 특별하게 대해주었던 이유가 호감 때문이 아니라, 정창인과 모의하고 있던 일에 이용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살려두고 특별하게 대해 준 이유가 자신이 이용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여겨 나름의 배신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장틸에게 엿을 먹이려는 삼촌의 일을 조력하는 데에 필요한 인간이니 죽일 순 없고, 그러는 김에 겸사겸사 몸은 끌리니 육체적으로 붙어먹고, 신루랑 몸도 한 번 섞으면서 날 손바닥에서 놀고먹었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듯하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음에도 일레이 스스로도 본인이 그렇다 여긴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 보니 정태의가 "너 나 좋아하냐?" 라는 물음에 "설마"같은 뉘앙스의 답변만 되돌려준다.
태평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태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일레이는 한쪽 눈썹을 보일 듯 말 듯 치켜올렸다.
"사이도 참 좋은 형제시군."
패션 (PASSION) 5권
3권에서 결국 폭발한 정태의가 일레이를 다소 엿 먹이고(?) 도망간 이후부터 감정선은 단순해진다. 사실상 서로 감정적으로 스며들어있는 상태에서 인정만 늦을 뿐, 이후는 몸을 섞는 행위를 거듭하며 그로 발생되는 사건과 계기들로부터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레이는 링 신루나 정재의를 상당히 거슬려한다.
신루는 사실 정태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태의를 가져야 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일레이'에게 전이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태의와 감정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처음과 끝이 순수하지 못했을지언정 좋아한 것은 사실이고, 심지어 정태의도 본인을 좋아하니 잘 풀린다고 여겼으나 결국 정태의를 좋아하는 마음이 수단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케이스. (마냥 이뻐하기는 뭐하지만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였다.) 신루 또한 정태의가 한 때 좋아했던 인물이었던 탓에 일레이가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지만, 그가 정말로 거슬려하는 쪽은 정재의 쪽이다.
정재의는 형제와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묶여 자신이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는 인물에, 길상천이라는 것으로 묶여있는 존재이다. 재의는 사실 태의의 존재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따라서 행운 이상의 '생명'으로 묶인 단순한 형제를 넘어서는 무거운 관계를 지니고 있다. 재의는 태의에게 '무겁냐'고 묻는다. 하지만 태의는 괜찮다고 한다. 형이 날 사랑하고 내가 형을 사랑한다는 그 감정이 그만큼 의심할 여지없이 단단하기 때문에. (일레이는 이 두꺼운 신뢰를 싫어한다.)
"형이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형을 생각할걸."그가 무겁게 여긴다면 자신도 딱 그만큼만, 서먹하거나 숨 막힌다면 자신도 딱 그만큼만.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틀림없이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아는 탓이다. 그리고 자신 역시 마찬가지.
ー내가 내걸어야 하는 몫만큼, 반드시 네게서 돌려받을 테니까.
"……돌려줘야 하기도 하고."
정태의는 쓰게 웃으며 속삭였다.
패션 (PASSION) 6권
하지만 흥미롭게도 태의는 재의를 대하는 원리로 일레이도 대하는데, 자각이 느리다 뿐 결국 정태의가 일레이에게 마음을 확실하게 주는 계기도 마찬가지이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정재의가 지는 무거움만큼 자신도 무거움을 감수하고, 눈을 잃은 신루에게 딱 한쪽 눈을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일레이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준 만큼, 자신을 위해 잃은 만큼 돌려주는 것. '일레이가 잃은 것'이 칭하는 것이 자신을 별저에서 빼내기 위해 포탄을 던져버린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정태의는 신루의 그놈이 잃은 게 뭐가 있냐는 질문에 '비인간성'이라 답한다.
정태의는 일레이가 그전에 가지고 있던 비인간적인 면모가 상당히 줄어드는 양상, 즉 그의 인간적인 배려나 감정적인 공감을 거듭하여 목격한다. 이는 결국 일레이가 정태의를 좋아한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일레이가 비인간성을 잃었다고 정태의가 신루에게 말할 땐 확신에 차있는 듯해 보이기도 한다. 일레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이 그것을 마땅히 돌려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쌍방으로 좋아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순간일 것이다.
일레이가 내내 태의에게 말하는 '넌 내 거다."는 아무래도 연애적인 감정을 본인이 느낄 리가 없다는 그 사고가 너무 강해서 나오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가 흥미도 있고 마음에도 들고... 옆에 두고 싶고, 섹스도 하고 싶고, 그렇다고 남처럼 함부로 대하진 못하겠고, 같이 지내고 싶은, 복합적인 생각이 결국 저 내 거다, 라는 단어로 나오는 듯하다.
"원래 내 꿈은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 만나서 잘 먹고 잘 사는 건데, ……에휴."
"온 세상 다정한 놈 다 죽여 놓을까."
패션 (PASSION) 6권
아무런 의심 없이 감정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관계라고는 쌍둥이 형뿐이던-비록 이 또한 정재의 때문이었으나-정태의에게, 정태의라는 인간 자체에 집착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어찌 해피엔딩이라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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