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책 내용의 결말과 전개에 대해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_예고 없이 감상 도입부터 스포일러 강하게 들어갑니다.
_미성년자 열람불가 컨텐츠입니다. 미성년자의 열람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포르노업계 #외국배경 #미국 #일공일수 #현대물 #서사물 #감성물
엄청난 캐미로 화제가 된 포르노 배우들의 카메라 너머 사정이 궁금하다면.
-RIDI 제공
메인 커플링 | 글렌 맥퀸 X 에드 텔벗(박여운)
#연상연하 #외국인공 #절륜공 #게이공 #스트레이트수 #무심수 #사채수 #서브공有
Walk on Water
_포르노로 예술을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은 거대한 착각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들부터 도장깨기 중이기도 하고, 책이든 만화든 영화든 인기 많은 보장된 컨텐츠 위주로 감상하는 성향이 있다보니 이름있는 작들부터 읽어나갔다. 워크 온 워터도 명성을 믿고 고민없이 구매해서 읽었다. 주변에서 비엘 즐겨읽는 분들이 워낙 좋다고 추천을 해주셨기도 하고.
총 6권으로 완결인데 6권이 6권이 아니다(?) 5/6권은 거의 4권까지 유지하던 분량의 두배 조금 안되는 양이라 전체 분량은 제법 많은 편이다. 이렇게나 긴 글인데 이를 감정선 하나로 완결까지 끌고가니 감정소모가 제법 있을 법 한데도 또 분위기 자체가 워낙 잔잔하고 서술자인 에드가 워낙에 담담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읽는 스트레스는 크지 않다. 그래서 글 내의 사건 및 서사가 스피드하게 진행되는 시원시원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지루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글을 읽을 때 스트레스가 큰 글을 좋아한다(?). 표현이 좀 기묘하기는 한데, 감정적으로 힘들고 아프게하는 스토리를 제법 좋아하기 때문에 일명 '찌통물'로 통용되는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워크 온 워터가 읽으면서 참 신선했던 것이, 독자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적으면서도 가슴을 참 아프게 건드는 점이었다. 나는 이런 점을 구성하는 대부분에 에드라는 캐릭터성이 독보적으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에드가 현대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상을 하고 있고, 그런 공감의 힘이 읽는 이를 크게 이입시키는 듯하다.
"나는 도망치는 게 아닙니다."
(략)… 자기 위안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이대로 열심히 살 거에요."
"어떤 사람들은… 그냥, …살아요."
워크 온 워터(walk on water) 6권
에드라는 캐릭터도, 맥퀸이라는 캐릭터도 사실 한 번쯤 예술을 꿈꾸었거나 현재진행형으로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다. 맥퀸은 자신이 목표하는 예술을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쟁취하고자하는 캐릭터이고, 에드는 꿈을 포기하고 그저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로 두 캐릭터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맥퀸은 동경과 성취 사이에서 형성되는 괴리에 고난을 겪는 인물이고, 에드는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평범한 삶으로의 극복만을 추구하는 다른 삶을 살지만,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쉽게 가까워진다. 에드가 맥퀸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끼고 빠르게 빠져들었던 것은 어쩌면 에드의 동경이 맥퀸이라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담겨있어 그랬을 지도 모른다.
맥퀸 같은 성인미-이는 성적, 육체적 매력을 뜻하지는 않는다.-가 넘치는 캐릭터를 나는 상당히 좋아하는데, 이런 캐릭터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나 약점을 상대방에게 드러내기를 매우 꺼려한다는 점이다. 이는 캐릭터 본인의 성향에서 기인하기도 하고, 외부적 요인에 의하기도 하는데 맥퀸의 경우는 후자이다. 포르노 장르에 대한 사회-대중의 시선, 감독이라는 가해자일 수 밖에 없는 위치. 차라리 이러한 처지가 억울한 것이라면 감정적인 호소라도 하련만 맥퀸의 갑이면서도 을인 사회적 지위는 당연한 것이고, 이를 본인도 충분히 인식한다. 자신의 처지를 너무 잘 아는데 자신이 하는 일들과 목표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넘칠 경우 자존감이 무지막지하게 깎일 수 밖에 없는데, 나에게는 맥퀸이 딱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자신을 향한 에드의 마음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여유롭게 행동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다소 소극적으로도 비치는 태도는 그곳에서 기인한 듯 하다.
에드는 무덤덤해보이지만 생각보다 저돌적이고 솔직하다. 감정이 은근히 날것으로 드러나고, 보편적인 감수성의 범위 내에서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구태여 숨기지도 않는다. 포르노가 아닌 사적인 잠자리를 제안한 것도, 고백도 모두 에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에드에게 맥퀸은 멋있는 사람으로 보였고, 실제로 에드는 맥퀸에게 그런 점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동시에 맥퀸의 고민이나 고뇌를 우습게보거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그 또한 예술을 꿈꾸었고, 현재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맥퀸의 부족한 면을 공감해주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맥퀸이 에드에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부끄러운 면면을 자꾸 털어놓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는 순간에 주마등처럼 지난 삶이 스친다던데. …왜 난 당신 고백에 지난 방탕한 삶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어."
워크 온 워터(walk on water) 3권
"미리 말해 두지만 에드, 난 포르노를 부끄러워하진 않습니다. 단지."
"챙 리우 같은 남자들에게 명함을 줄 수 없는 이런 날들이 반복될 테고,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 순간을 생각하면 좀… 작아지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맥퀸은 저한테 과분하니까, 그러지 마요."
워크 온 워터(walk on water) 4권
"내가 했던 말들 때문에 당신이… 작게… 느껴졌다면."
"미안해요."
워크 온 워터(walk on water) 6권
워크 온 워터가 어떤 스타일의 작품인지는 이미 알고 읽었기에, 포르노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해서 씬만 난무하는 글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기에 사실 포르노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룰지가 매우 궁금하면서도 조금은 염려스러웠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이 소재를 풀어내는 방법이 이 책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포르노 회사를 차리고 감독일을 하는 맥퀸과, 그의 밑에서 포르노를 촬영하여 사채를 갚는 에드의 과정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로 너무 현실적이지만 바람직한 일은 결코 아니다. 그저 ~맥퀸을 통해 사채를 갚아 행복한 에드의 이야기~ 였다면 감동의 여운 자체는 절절하게 남기는 했어도 결말이 상쾌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맥퀸이 씻지못할 오명이자 맥퀸의 영원한 피해자일 라이언의 등장과 결국 그를 통해 어쩌면 붕 뜬 기분으로 어중간하게 지레짐작하고 넘어갔을, 에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맥퀸과 에드 두 사람의 관계의 약점을 에드가 직시하게 되는 연출이 무척이나 좋았다.
멕퀸은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 뒤에서 라이언에게 했던 실수를 에드에게 다시 한 번 저지른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온전한 맥퀸이라는 개인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맥퀸이 만든 <완벽함>과 <전이록>은 포르노라는 장르 아래서 억지로 시도한 예술이고, 그것이 결국 사람의 성과 신체를 소모적으로 팔고 소비되는 매체임을 간과한 결과물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을 의식 아래에서 이미 인식하고 있었지만 양지로의 갈구와 약간의 질투가 함께 뒤엉켜 그 사실 자체가 상흔이 돼 그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에드의 계좌에 꽂아넣은 5만 달러도 거기서 기인하였고, 그를 에드도 알고 있었다.
맥퀸이 결국 맥퀸엔터를 그만두고 <전이록>을 회수하는 것은 에드를 향한 부채감이나 미안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된 시작을 회고하기 위한 행위이자 깨달음이다. 맥퀸이 비록 '포르노 왕국을 거느리는 우두머리'로 표현되지만 결국 에드 앞에서 무수히 작은 인간 중 한 명이 되는 과정이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어쩐지 이 글의 공들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어째 전부 실수투성이인 듯한 기분이 드는데... 챙 리우는 사실 맥퀸에 비하면 정말 어리기 그지없는 인간으로 비교되는지라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씁쓸함을 느끼게 만든다. 자신을 내려놓지 않고 상대를 상처입히기만 하는 챙이 에드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챙-에드의 관계가 묘하게 맥퀸-라이언의 관계와 겹쳐보이기도 한다.
- 너와 함께 있는 순간순간이 물 위를 걷는 기적 같더라. 그러니까 에드.
- 오래도록 사랑하다 낡아지는 때가 오더라도 처음 우리가 사랑하기로 한 순간의 그 기적 같은 느낌을 잃지 말자.
워크 온 워터(walk on water) 6권
맥퀸이 에드에게 말하는 사랑이 어쩌면 더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유치해지는 모습도 사랑하는 인간의 예쁜 모습 중 하나이지만, 어른이기에 성숙하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사랑이 역시 멋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
최근 walk on이 단역을 맡는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인생의 단역이기만 했던 에드가 맥퀸이라는 무대 위에서 주연배우가 되어 물위를 걷는 기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탁월한 제목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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